벙어리가 태어난 줄 알고

“쯧쯧, 벙어리가 태어났구만. 어째 울질 못하는 거여?”

내가 태어났을 때 울지를 않자 부모님은 걱정이 되어 엉덩이를 철썩 때려 보았다고 한다. 그래도 울지 않고 벙긋벙긋 웃고 있었기에 가족들은 벙어리가 태어난 줄 알고 실망하였다는 것이다.

훗날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된 후 나는 ‘왜 태어나면서 울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앞으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할 주의 종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삶을 살아갈 것을 내 영혼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진다.

1943년 음력 4월 20일, 나는 전남 무안군 해제면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부친 이차범 씨와 모친 조감장 씨 슬하에 3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런데 한학에 조예가 깊으셨고 풍류를 즐기기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일제 시대 일본을 왕래하며 여러 가지 사업을 펼쳤으나 해방 후에는 사업을 중단하고 조용하게 살 수 있는 곳을 물색하셨다. 그래서 내가 세 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장성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장성군 남면 분향리 마을이었다. 이곳은 천씨가 아니면 발붙이기 어렵다는 봉건적인 지역이었지만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게 되었다.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아버지는 세상과의 접촉을 끊고 주로 집 안에서 독서를 많이 하는 분이셨다. 그래도 손님들이 자주 찾아오셨는데 그럴 때마다 술상을 차리게 하셔서 손님들과 시조를 읊거나 한학을 겨루시곤 했다.

큰 인물로 키우고자 애쓰셨던 아버지

“재록아, 사람은 이렇게 절개가 있어야 하느니라. 너도 그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녀가 올바로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에 있을까마는 유년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 주기 위해 애쓰시던 아버지와 평생 가족을 위해 섬기고, 희생하며, 변함없는 곧은 마음을 가지셨던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내가 다섯 살 때부터 천자문을 가르쳐 주셨다. 또한 재미있는 영웅호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 주셨는데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 장비, 조자룡이 주인인 유비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무용담이나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불게 하였던 대목에 가면 손에 땀이 날 정도로 흥미진진하였다.

아버지는 공자나 맹자 등 성현들의 가르침이나 위인들의 지조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자신이 죽임을 당할 줄을 알면서도 쓰러져 가는 고려 왕조를 끝까지 섬겼던 정몽주의 절개나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해 낸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명 깊었다. 자신에게 해가 올지라도 끝까지 변치 않고 자신의 위치를 지켰던 위인들의 이야기는 어린 가슴에도 깊이 새겨졌던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하여 나는 부모에게 효도를 하며 정도(正道)를 걸어야 할 것과 한 번 은혜를 받았으면 평생 잊지 않고 갚아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국회의원이 되리라는 꿈을 키우며

장성군에 있는 분향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아버지는 내 고사리 같은 손을 붙들고 선거가 있을 때마다 유세장에 데리고 가셨다. 20리, 30리 길을 멀다하지 않고 걸어 다녔는데 도의원,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 등 가리지 않고 나를 데리고 다니기를 즐겨하셨다. 아버지는 막내아들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수 있는 정치가로 키우고 싶으셨던 것이다.

당시 자유당 시절이었는데 선거 유세장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단상에서 연설하고 있는 후보들의 모습이 어린 마음에 매우 멋있게 보였고, 위대한 인물처럼 보였다.

“나도 크면 저렇게 훌륭한 인물이 되어야지...”

후보들의 연설을 들으면서 어느 사이 나는 장래에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이 꿈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도 계속 되어 이제는 스스로 나 혼자 선거 유세장을 찾아다니며 후보들의 연설에 귀 귀울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나는 형과 누나들을 통해 구구법을 외우고 한글을 깨우쳤기에 학교 수업이 별로 재미가 없었다.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것이 일과였는데 병정놀이, 씨름, 발차기 등과 같은 과격한 놀이를 즐겨하였다.

나는 또래 아이들보다 힘이 센 편이었으며 승부의식이 강하여 싸움에서는 꼭 이겨야했다. 어찌하든지 이길 때까지 계속 시합을 해야 할 정도로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한 편이었다.

강건한 체질이었지만 어머니는 매우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막내아들에게는 보약을 달여 먹이셨다. 당시 시골에서 보약을 먹으면서 성장한다는 것은 매우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을 만큼 막내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각별하였다.

가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바깥 나들이를 할 때면 장기를 두거나 담소를 나누던 동네 어른들께서 덕담으로 한마디씩 하셨다.

“고녀석, 참으로 똘똘하게 생겼네. 크면 한자리 하겠어”

“관상을 보아하니 큰 인물이 될 것 같으니 아이 잘 키우슈”

어머니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흐뭇해하시는 표정이셨다.

나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때만 되면 쌀을 이고 절에 가셔서 불공을 열심히 드리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