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의 자괴감이 자살시도로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 나는 선배인 중학생과 놀다가 갈비뼈 한 개가 금이 갈 정도로 크게 다쳤다. 당시 의학이 발달한 것도, 농촌에서 병원 갈 형편도 되질 않았으므로 부모님은 내게 보약을 먹이며 치료되기를 기다리셨다.

그러나 해마다 여름이 되면 다친 곳이 아파왔다. 옆구리가 결리고 통증으로 호흡하기도 어려웠고 달리기도 할 수가 없었다.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었기에 아버지는 독사뱀 두 마리를 소주에 담가, 나에게 조석으로 한잔씩 마시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어린 시절에 아버지 앞에서 자연스럽게 술을 배우게 되었다.

또 4학년 때 내가 다니던 학교에 별명이 미친 선생이란 분이 있었다. 내가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사비’라는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이 선생님은 우리가 싸우는 줄 알고 교무실로 불렀다. 선생님은 야단치시면서 우리들을 세워놓고 따귀를 때리셨다. 그리고 우리들을 마주 세워놓고 서로 상대방의 뺨을 20대씩 때리도록 했다. 나는 선생님에게도 맞았을 뿐 아니라 친구에게 20대를 얻어맞았다. 이 사건으로 나는 얼굴이 퉁퉁 부었고 한쪽 고막이 터졌다. 귀에서 계속 진물이 나왔으며 청각장애가 생겼다. 이 선생님은 학교에서 쫓겨나셨지만 그 후 나는 많은 고통을 당해야 했다.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

1959년, 광주시에 있는 송정 중학교에서 평탄하게 학업을 마친 후, 서울에 상경하였다. 성동구 신당동에서 살고 있던 큰 누님 댁에 기거하면서 고등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몸이 워낙 아파 고등학교 3학년 무렵 40여 일이나 결석하였다. 어느 날 학교에 가지 못하고 누워 있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집에 들어 와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였다.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군. 하나님이 어디 있다고 저렇게 전도하면서 다니는 것일까? 나는 예수 믿지도 않겠지만 예수 믿으면 저렇게 전도하러 다녀야하는데 부끄러워서 어떻게 할 수 있담!”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한심하게 보였다. 무신론자였던 나는 어릴 때부터 유달리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탔기에 전도하는 것이 싫어서라도 하나님 믿지 않겠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어렸을 적에 한학자이신 아버지는 “너는 소금 하나도 얻어먹지 못할 성품을 타고 났다”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가난했어도 시골에서 소금은 흔히 구할 수 있었다. 그런 소금조차 얻어먹을 수 있는 팔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씀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서 학비를 내라는 고지서가 나오면 나는 부모님에게 보여드리지 못했다. 그래서 번번이 기한을 넘겼고 선생님이 야단치며 부모님 모셔오라고 하면 그제서 어쩔 수 없이 고지서를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바로 돈을 주셨다. 고지서를 보여 드리면 바로 돈을 주실 것을 알지만 돈을 달라는 말을 하기가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이렇게 내성적이면서도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무엇을 달라고 하지 못하는 성격은 목회현장에서도 계속 되었다.

기억력이 사라져 자살을 시도하고

고등학교 시절, 건강이 따라주질 않아 잦은 결석으로 제대로 공부할 수 없었던 나는 서울대 공대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재수를 하였다. 수험 공부를 하면서 잠을 쫓고자 잠이 오지 않는 약인 각성제(覺醒劑)를 매일 복용하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가 떨어져 점점 갯수를 늘려야했다. 나중에는 중독현상이 나타나 각성제를 습관적으로 먹어야했고, 복용하지 않으면 무기력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져 그나마 공부할 수가 없었다.

하루 4시간씩 잠을 자면서 당시 을지로 입구에 있던 국립도서관 (현재 롯데백화점 자리)에서 일년 동안 열심히 공부한 결과 서울대 공대에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1962년 11월, 대학 입시가 가까워 올 무렵, 나는 기억력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잠시 쉬는 시간에 신문을 보는데 이승만 대통령의 이름이 떠오르질 않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동안 열심히 연습했던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도 까마득해졌고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잠시 멍해진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던 내용을 아무리 떠올려보려고 해도 가장 기초적인 내용조차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깊은 벼랑 속에 끝없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앞날에 아무 희망이 없는 것 같았고, 깊은 절망감만이 나를 덮쳐왔다.

“내성적인 성격에다 부끄러움까지 많은 내가 재수했는데도 이제는 기억력이 사라져 대학교에 가질 못하게 생겼으니 그동안 시골에서 뒷바라지를 열심히 해 주신 부모님의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으랴? 도저히 망신스러워 살아갈 수가 없다”

나는 자살을 결심하고 약국을 돌아다니면서 효능이 좋다는 미제 수면제를 사서 모았다.당시 나는 공부에만 전념하고자 큰 누나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면서 옆집에 방을 한 칸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누님, 오늘 저녁엔 친구 집에 가서 공부하려고 합니다. 저녁 식사는 집에서 하지 않을 것이니 기다리지 마세요”

내 계획을 눈치 챌 수가 없었던 큰 누나는 알았다고 했다. 나는 짐을 정리하고 부모님과 누나, 형에게 유서를 써 놓은 후 방문을 걸어 잠궜다. 이부자리를 깔아놓고 수면제를 많이 먹고 누웠는데 한동안 의식이 말짱하더니 어느 순간 나는 의식을 잃었다.

그러나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였던가? 당시 동대문에서 포목점을 하고 있던 형님과 매형은 매일 밤 10시에 가게 문을 닫고, 다른 용무를 본 다음, 밤 12시쯤 집에 도착하는 것이 일과였다. 그런데 그 날 이상하게도 형과 매형은 평소와는 달리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매형, 오늘 가게 문을 빨리 닫고 집에 들어가야겠습니다.”

“그래? 나도 일찍 들어가고 싶었네”

이날 일찍 가게 문을 닫고 매형 집에 도착한 형님은 평소에 공부에 방해된다고 찾지도 않던 동생을 찾았다.

“동생은 어디 있나?”

“오늘 저녁에는 친구 집에 가서 공부한다고 했어요.”

그래도 형은 옆집에 있던 내 방에 찾아 왔다.그런데 방문이 잠겨있는 것을 보고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어 문을 부수고 들어가니 이미 나는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고 한다.

“혹시 병원에 가서 위를 세척해 내면 살아날 수 있을지도 몰라”

형과 매형은 급히 나를 병원에 옮겼는데 의사는 내가 워낙 약을 많이 먹었기에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며칠 만에 깨어났지만 이 사건으로 그나마 기억력을 잃게 되었다.

일 년이 지나도 기억력은 회복되질 않았다. 기억력이 없었지만 다시 공부를 해서 1964년 3월, 한양대 공대에 입학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