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거룩한 땅 이스라엘
성묘교회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눅 23:33)

성묘교회

제14처소

성묘교회내부

아리마대 요셉이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지냈다.(마27:60~61)
성묘교회내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 새벽에 예수님의 시신을 찾고자 무덤에 온 막달라 마리아와 동정녀 마리아는 빈 무덤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 성묘교회는 주님의 무덤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된 후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골고다를 찾아왔으며 366년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여 성묘교회가 세워졌다.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이들마다 성령을 선물로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사해

사해

사해는 해면보다 398m나 아래에 있어 지표로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점이다. 남북길이 80km, 동서의 폭이 18km, 둘레 200km, 넓이는 950km2로 보통 바다보다 염도가 7∼8배 높아 아무 생물도 살 수가 없는 곳이다. 사해는 염분뿐 아니라 광물질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 이스라엘에서는 이 근처에 공장을 세워 칼슘, 유황, 마그네슘, 브로마인 등 여러 가지 자원들을 추출해 낸다. 이것들은 이스라엘 주요 수출 품목이며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죽은 바다가 아니라 무궁한 보물이 숨겨져 있는 보물창고라고 각광받고 있는 사해.
사해바다는 각종 피부병과 관절염, 류머티즘을 치유하는 데 효능이 있다고 한다. 또 검은색 진흙은 미용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노예들을 사해로 보내 검은 진흙을 가져오게 했고 그것을 발라 아름다움을 유지했다는 역사 기록도 있다.

사해

롯의 아내 소금기둥
롯의 아내 소금기둥

사해 근처 소돔 지역에 사람이 서 있는 형상의 소금기둥이 있는데 롯의 아내로 알려져 있다.
쿰란

쿰란과 사해사본
1947년은 금세기 성서 고고학계에서 최대 사건으로 평가되는 ‘사해사본’이 발견된 해다. 사해 북서쪽 쿰란 지역 동굴에서 베드윈 목동이 잃어버린 양을 찾다가 우연히 2천 년 동안이나 질그릇 항아리 속에 보관되어 내려왔던 사본들을 발견한 것이다.
유대교 한 분파인 에세네 사람들은 서기 전 1세기부터 사해 근처의 광야, 쿰란 지역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서기 68년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던 로마 군대는 쿰란 공동체를 완전히 파괴했다. 이들은 로마 군대가 쳐들어 오자 양피지로 만든 두루마리 구약 성경과 종교 문헌들을 질그릇 항아리에 넣어 근처 동굴에 숨겨 놓았던 것이다. 이들은 독신생활과 금욕생활을 하면서 자급자족하였고, 홍해에서 나는 달팽이의 피로 만든 잉크를 사용하여 성경 사본을 제작하였다.

11개의 동굴 중 4번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사본은 현존하는 구약 사본으로 최고의 사본이며 구약 사본의 역사를 종전보다 천 년 앞당기게 해 주었다.

쿰란동굴
쿰란동굴

엔게디
“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거하니라” (삼상 23:29)
엔게디

쿰란에서 20km 정도 남쪽, 사해 서안 중앙부에 있는 샘으로 원래 뜻은 ‘염소들이 마시는 샘’이다.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굴 속에 숨었을 때 그 굴 속에 들어온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만났으나 그의 겉옷자락만 베고 굴에서 나와 사울에게 자신의 무고함을 고했던 장소가 바로 엔게디였다.
 

유대인학살 기념관

유대인 처형장면

예루살렘 신시가지 서편에 금세기 최대의 비극적인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대인 학살 기념관인 야드바셈(Yad Vashem)이 있다. 1953년에 세워진 야드바셈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의 손에 무참하게 학살당한 600만 유대인들의 원혼을 달래는 곳이다. 그 중 150만은 어린이들이다. 기념관 전시실은 모든 벽면이 검정색으로 되어 있어 암흑의 역사를 보존하는 현장임을 상징하고 있었다. 전시된 사진, 신문철, 문서, 각종 물증들은 독일 나치의 등장으로부터 몰락까지 유대인들이 경험했던 수난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잘못된 과거를 망각하면 잘못된 과거는 반복된다’는 명언이 있다. 야드바셈 기념관은 이 지상에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인류에게 전해 주고 있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보면 유대인들이 벌거벗긴 채 참혹하게 죽어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처형하면서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외쳤다. 그들이 던진 이 악한 말은 현실에서 그대로 이루어졌다.
40년이 채 안되어 예루살렘은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해 초토화되었고 110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하였으며 약 9천 명 가량 살아남아 포로로 잡혀갔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그 후 1,900여 년 동안 지도상에서 사라져 버렸고 백성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핍박받으며 죽임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유대인 학살장면
 

마사다

쿰란 동굴을 지나 남쪽으로 가다 보면 왼편으로는 사해가 이어지고 최남단 도시 엘랏이 나온다. 쿰란으로부터 51km쯤 남쪽을 달려 내려오면 유대 광야 언덕 절벽 같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천연적 요새인 마사다가 있다. 유대인의왕이었던 헤롯은 유대인들의 반란을 두려워하여 유사시 피신할 수 있는 요새궁전을 마련하였으니 바로 마사다였다.

헤롯 왕은 마사다 정상에 계단 모양의 3층 궁 전을 지었고 정상 부분을 성벽으로 둘러쌓았으며 저수장과 여러 개의 곡식 창고도 만들었다.
헤롯이 죽은 후 서기 66년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 통치에 반대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서기 70년 로마제국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킴으로 진압되었는데 예루살렘 성전도 불에 타 파괴되었다.
마사다 요새에서 약 960명의 열심 당원들은 최후까지 남아 저항을 계속했다. 로마 군대는 3년간 공격 끝에 토담 경사로를 만들어 성문에 불을 지르고 성벽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로마 군대가 마사다 성벽을 부수기 시작한 날 밤 960명은 로마인의 칼에 의한 죽음보다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오늘의 마사다는 유대인들이 힘이 약해 죽음으로 항거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의 역사가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굳은 결의를 다짐하는 곳이다.
현재 이스라엘 군인들은 훈련 마지막 과정으로 이곳을 찾아와 2천 년 전 마사다 사수 정신을 되새기며 ‘마사다 네버 어게인’(Masada Never Again)을 외친다고 한다.
마사다
마사다


 


홀로코스트

600만 유대인 학살 기념관에서


 




 
 
11   제 2부 거룩한 땅 이스라엘 성지순례(7)-(예루살렘)
12   제 2부 거룩한 땅 이스라엘 성지순례(8)-(채찍교회, 비아돌로로사)
13   제 2부 거룩한 땅 이스라엘 성지순례(9)-(성묘교회,사해,쿰란,유대인학살기념관,마사다)
14   제 3부 초대교회 성지순례(1)-(바울의 1,2차 선교여행 지도)
15   제 3부 초대교회 성지순례(2)-(성소피아 사원, 빌라델비아, 에베소, 밧모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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