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반도의 역사는 구석기시대까지 올라간다. 특히 BC 7세기 경 이곳에 문명을 전개한 그리스인이나 에트루리아인의 문화유산이 현재에도 많이 남아 있다.
이탈리아의 모든 지역이 로마제국이 역사 유적지이므로 어디를 가나 기독교의 많은 교회들이 남아 있다. 로마는 하나의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도시 자체가 유적들이 많이 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기원전 735년 로물루스가 팔라띠노 언덕에 양치는 목동들과 함께 세웠다는 로마는 후에 거대한 로마제국의 중심이 되어 한때는 힘으로, 혹은 예술로, 혹은 종교로 세계를 지배하였다.
로마 시내로 들어서면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보이는 것마다 로마시대의 유적이요, 발길이 닿는 곳마다 역사적인 교회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의미있는 것은 로마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참믿음의 현주소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통과 분노를 표현한 라오콘 상


베드로 대성당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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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79년 8월,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도시 전체와 2만여 명의 주민이 함께 화산재에 파묻힌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도시이다. 폭발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몇 차례 경고를 했었지만 폼페이 사람들은 그것을 듣지 않았고, 미처 손을 써볼 겨를도 없이 이곳 사람들은 이집트에서나 볼 수 있는 미이라 형상이 되었다. 폭발 당시 폼페이는 로마 제국의 어떤 도시보다도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위락 시설로 로마 귀족들 사이에 인기 높은 리조트 도시였으며, 농업과 상업도 발달해 있었다.
현재 발굴된 유적들을 보면 성적으로 타락한 당시의 퇴폐적인 사회상을 나타내 주고 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사람들의 죄가 관영해질 때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였던 것을 떠올리게 되는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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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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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은 로마인의 지하 무덤이었으나 기독교가 공인되기 이전에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하여 숨어 지냈던 곳이다. 이 장소는 16∼19세기에 걸쳐 재발견되었으며 귀족 가문의 소유였던 지하 매장실로부터 여러 층으로 된 긴 복도로 이루어져 있다.


카타콤에는 초기 기독교 예술의 귀중한 재산이 되고 있는 조각, 그림, 형상들이 새겨져 있다. 로마 교회 크리스천들은 카타콤에서 장례를 지낸 후 시신을 안치한 주변에 성화를 남겨 놓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선한 목자로 그린 성화도 많으며 크리스천을 물고기 모양으로 나타낸 표시도 발견하게 된다.
희랍어로 물고기라는 어휘 ‘익투스’(Ichthys)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의 머리글자와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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